#요일프로젝트 #목요일 #걷기만하네 #모로코타가주트 #서핑바보
제가 생각하기에 서핑은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의 끝판왕 중의 하나입니다. 나름의 기준은 장비를 최소화하여 온몸으로 바다를 만나는 것입니다. 일종의 물아일체라고나 할까. 지난 몇년 간 국내외에서 서핑을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 시간과 돈을 들이붓고 비로소 깨달았어요. 불행하게도 저는 정말 드럽게 파도를 못 타는 서핑바보입니다. 얼마나 못하냐면 패들링을 하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속도가 안 나고, 스탠딩을 하면 균형을 잃고 곧바로 바다에 처박혔어요. 바다와 일체가 되기는 커녕 파도에 따귀맞는 기분만 들었습니다. 철썩철썩.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사랑은 도무지 외로운 줄 몰라요. 론니플래닛 덕분에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서핑의 성지로 거듭난 타가주트로 향했습니다.
이름없는 해변에 자리한 숙소에 여장을 풀고 마을을 둘러 보았습니다. 너무너무 작은 마을이라 걸어서 동네 한바퀴에 20여 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비수기인지 셔터를 내린 상점들도 있고 골목골목은 한산했습니다. 그나마 여행자들이 북적이는 곳은 영국의 서퍼그룹 Surf Maroc이 운영하는 부티크 호텔과 레스토랑이었어요. 내추럴과 오가닉 컨셉의 인테리어, 모델 같은 외모에 세련된 매너를 가진 모로칸 직원들,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분위기… 얼핏 보았지만 마리끌레르가 이곳을 힙 터지는 휴가지로 소개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왠지 서프마록이 서핑을 좋아하는 히피들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웬걸, 과거에 그랬을지언정 지금은 타가주트에서 호텔 네다섯 곳, 레스토랑 두어 곳, 서핑/요가레슨을 운영하는 기업입니다. 이곳의 숙식비, 레슨비는 모로코 물가는 말할 것도 없고 글로벌 체인호텔과 비교해도 매우 비싸요. 아마도 유러피안 여행자들은 숙식, 오락거리 그리고 힙스터가 된 듯한 만족감이 포함된 서프마록의 올인원 서비스를 이용하고 돌아갈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얼마나 될까요? 물론 모로칸 직원들을 고용하겠지만, 주민들 중에 ‘용모단정’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선진국의 자본이 모로코의 작은 마을을 잠식한 것 같아서 조금 씁쓸했습니다(탕헤르에서는 메디나의 한 골목을 자신의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채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이탈리아 여자를 만남).
그나저나 저는 타가주트에 머무는 동안 한 번도 서핑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서양의 크고 높고 스펙터클한 파도를 보고 겁을 먹었거든요. 타가주트 방문 목적인 서핑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책도 읽고 요가도 하고 산책도 하고(큰 개가 계속 따라와서 무섭) 읍내 구경도 가고(합승택시를 얻어탔는데 마티즈에 사람들을 몇 명까지 태울 수 있는지 같은 호기심천국의 실험과 비슷한 장면이 연출됨)... 숙소에 다른 손님이 거의 없어 전망이 끝내주는 공용테라스를 독차지하고 밤낮으로 바다를 보기도 했습니다. 밤이 되어 사람들의 소란함이 사라지니 파도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어요. 철썩철썩. 이번 여행에서 가장 쓸쓸하고 고요한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