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프로젝트 #목요일 #걷기만하네 #마드리드게이프라이드
저는 의외로 방콕이나 카이로 같은 대도시를 사랑합니다. 대도시에는 자본가, 노동자, 이민자, 부랑자, 그리고 저같은 얼뜨기 여행자까지 전세계의 사람들이 몰려 들고, 시시각각 그들의 욕망의 생성과 충돌이 발생합니다. 이를 토대로 다양성과 역동성을 가진 혼종 문화가 탄생하는데, 바로 이것이 대도시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도 이런 매력이 넘치는 곳입니다. 비록 첫인상은 소매치기에 대한 경각심 때문에 혼란과 혼돈이었지만요.
도심 곳곳은 마침 게이프라이드를 며칠 앞두고 있어 더욱 상기되어 보였습니다. 레인보우 아이템으로 한껏 치장한 사람들이 레인보우 깃발들이 펄럭이는 상점가를 활보하고 있었거든요. 유럽사회가 게이 프렌들리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올해 40주년을 맞이한 마드리드 게이프라이드는 단 하루의 축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장장 열흘 간 계속되었고, ‘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축제였습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게이프라이드 행진은 7월 7일에 열렸습니다. 크고 화려한 퍼레이드차량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저마다 개성있는 퍼포먼스를 준비한 다양한 그룹이 참가했습니다. 시민들의 환호를 가장 많이 받은 그룹 중 하나는 게이/레즈비언 경찰단체였습니다. 스페인에서도 공직자의 커밍아웃은 어려운 일인가봐요. 행진에 참가한 그룹이 얼마나 많았냐면, 아토차역부터 콜른 광장까지 약 3km 거리를 걷는 데 무려 4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누군가 건네준 ‘Todos Somos Raros(우리 모두가 이상하다)’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시위대와 함께 걸었습니다. 도로변에는 시위대를 반겨주는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이날 대략 100만명의 시민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서울퀴퍼와 비교해 경찰들이 아니라 시민들이 시위대를 감싸주고 안티집회가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행진이 한창인 도로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빙 둘러싸고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한 여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여자파트너에게 반지를 건네며 청혼하는 중이었습니다. 파트너는 기쁨에 가득찬 얼굴로 청혼을 승낙했습니다. 두 사람은 열렬히 키스했고, 주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그들에게 축하와 지지를 보냈어요.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이었어요. 네, 모든 사랑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덧. 어제 문재인정부가 발표한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2018-2022)에 성소수자 인권이 빠졌다고 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미진한 입장을 보이더니 여러모로 실망스럽습니다. 사랑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투쟁!
https://elpais.com/elpais/2018/07/09/album/1531123574_779132.html#foto_gal_14